2023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직관하다! - by 물개

2023년 후쿠오카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7월 14일 금요일부터 7월 30일 일요일까지 장장 보름이 넘는 대장정을 마무리했습니다. 국제수영연맹의 명칭이 114년 만에 FINA에서 World Aquatics로 바뀌면서 벌인 첫 대회이기도 한데요.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인 후쿠오카에서 치러진 이번 대회에서 경영, 아티스틱 스위밍, 수구, 다이빙 선수들의 다채로운 경기들을 만나는 일은 수영인으로서 촉촉했던 2주였습니다.

실은 저는 7월 26일 수요일에 후쿠오카에 다녀왔습니다. 급작스럽게 결정된 여행지였는데 대회가 마침 열리고 있었고, 이때다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TV나 유튜브로는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숱하게 봐왔는데, 경기장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을 보는 느낌이 어떨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인데요. 저녁에 후쿠오카 공항을 빠져나와 짐을 급하게 숙소에 푼 뒤, 바로 경영 경기가 열리는 마린 멧세 후쿠오카로 향했습니다. 공항과 숙소, 경기장까지 모두 인접해 있어 초행길임에도 어렵지 않게 경기 시작 전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티켓을 예매하지 못해 현장 발권에 운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다행히도 다 팔린 사이드석을 제외하고는 티켓을 현장에서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경기장 가운데 쪽에 해당하는 좌석을 지정받았고, 발권 이후 경기 시작까지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 경기장 앞 부스들도 구경했는데요. 아레나, 야쿠르트 등 대회 후원사들의 부스와 굿즈를 판매하는 기념품샵, 푸드트럭들까지 대회 현장이 일종의 축제 현장 같았습니다. 세계 5대 스포츠 이벤트에 속하는 대회이니만큼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경기 시작 15분 전, 지정된 좌석으로 향했습니다. 확실히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여서 그런지 다수의 일본 관객들이 객석을 채우고 있었어요. 예전부터 일본 사람들이 수영 대회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경기장에 어린이들과 함께 온 가족 단위의 일본 관객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에게 수영 대회는 생활의 일부처럼 느껴졌어요. 경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응원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신나는 음악이 장내를 가득 채웠고, 관객들이 리듬에 맞춰 일제히 응원 풍선을 두드리는데 처음 수영 경기를 보러 간 입장에서 분위기에 압도되었습니다.

오늘 경기에 참여하는 심판들이 소개되고 장내 아나운서의 외침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예정된 저녁 경기들이 시작됐습니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는 오전에는 예선이, 저녁에는 준결승과 결승으로 꾸려졌는데요. 제가 갔던 26일에는 황선우 선수가 출전한 자유형 100m 준결승을 포함해서 총 9경기가 진행됐습니다. 전 세계에 내로라하는 선수들의 수영을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감회가 남달랐는데요. 특히, 화면보다 선수들의 수영하는 모습이 훨씬 빠르게 느껴졌고, 제가 앉은 곳과 수영장 사이에 거리가 있는 편이었는데, 선수들이 취하는 동작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잘 보였습니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숨죽이고 있는 사이사이, 선수들의 물살을 가르는 소리가 장내로 은은히 번지는 게 긴장감을 주면서도 근사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황선우 선수의 자유형 100m 준결승 결과는 다소 아쉬웠으나,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오르는 경험이었습니다. 선수들이 스타트하는 곳 바로 뒤편에 각 국가 선수, 코치진들이 포진해 있었는데요. 각자 자신과 같은 국적의 선수들이 출전하면 한층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응원 경쟁이 붙기도 했습니다. 황 선수가 등장할 때 우리나라 선수들과 코치진이 목 놓아 황 선수의 이름을 연호하는 장면은 중계 화면에는 잡히지 않았지만, 실시간으로 마주한 진귀한 풍경이었습니다.

제가 실제로 본 경기 가운데 남자 자유형 800m 결승과 여자 자유형 200m 결승은 경기 자체로 흥미로웠는데요. 자유형 800m는 경영 종목으로는 장거리 종목으로 분류돼 자칫 지루할 수 있을 법한데, 샘 쇼트 선수와 아흐메드 하프나위 선수가 경기 초반부터 지속해서 엎치락뒤치락하는 통에 1초도 놓칠 수 없었습니다. 또한, 여자 자유형 200m 결승은 개인적으로 응원했던 캐나다의 서머 매킨토시 선수를 제치고 몰리 오캘러헌 선수가 엄청난 역영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했는데, 객석에서 절로 박수칠 수밖에 없었던 대회의 명장면이기도 했습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오면서 흡사 콘서트에 다녀온 것처럼 진이 빠졌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선수들의 수영하는 모습에 주먹을 힘껏 쥐기도 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으니까요. 같은 국적의 선수들이 아니더라도 세계적인 선수들의 수영을 지켜보는 일만으로도 평소에 수영 생활을 즐기는 저에게는 배움의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수영을 깊이 흠모하는 관객들 사이에 있다 보니 어느새 저의 마음속 수영에 대한 생각들도 커져만 갔던 것 같습니다. 여행지에서 봤던 것도 결정적인 요인이었겠죠. 수영을 하는 것만큼이나 수영을 보는 것도 흥미로울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후쿠오카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 황선우 선수 스타트하기 전 모습

중계 화면에서는 선수를 소개하고 또 다른 선수를 바로 소개해야 하기 때문에 한 명의 선수가 스타트대에 오르기 전까지 어떤 준비를 하는지 알 길이 없죠. 그렇지만 직관은 한 명의 선수만을 오롯이 지켜볼 수 있는 행운이 있습니다. 자유형 100m 준결승에 출전하는 황선우 선수가 스타드대에 오르기 전 모습을 멀리에서 담을 수 있었습니다. 황 선수의 일종의 리추얼을 본 셈이죠. 처음 입장하자마자 자신이 오를 스타트대를 점검하기도 하고, 어깨 부분을 가볍게 스트레칭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자기 몸을 툭툭 치거나 물을 빠르게 적시는 모습은 입수 전 근육이 놀라지 않게 사전에 준비하는 것 같았고요. 자신을 응원하는 소리에 화답하기도 하고, 옆에 선수와도 인사를 하는 모습에서 여유도 잊지 않은 듯했습니다. 황 선수보다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더 떨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더 떨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