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스』라는 이름의 책 표지였습니다. 지은 사람은 ‘태재’라는 분이었죠. 한 줄 소개는 이렇습니다. '불가능했던 일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지기까지 10개월간의 수영장 에세이' 사진에 이어 물개가 붙인 코멘트는 이랬습니다.
“요 책이 지금까지 읽은 수영 에세이 중에는 제일 재밌어!”
물개의 추천을 듣고 그냥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찾았어요. 후루룩 읽히더군요. 공감가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제가 초급반에 입성하면서부터 겪은 일을 태재님도 겪었더군요.
가장 깊이 공감하며 웃었던 장면은 ‘수건을 들고 가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p.106-107
오늘은 강사님이 없었다. 이런 날이 가끔 있는지 다른 분들은 알아서 자기 헤엄을 잘 쳤다. 그래서 나도 따로 물어보지 않고 나의 헤엄을 쳤다. 아니 그런데, 오늘은 강사님만 없었던 게 아니었다. 강사님보다 중요한 존재가 없었다! 내 수건!
(중략)
원래는 샤워실에서 몸을 닦고 탈의실로 나가야 하지만, 수건이 없으니 팔 벌려 높이뛰기를 네 번 했다. 물기를 털어내고, 샤워실을 나갔다. 빠른 걸음으로 나가면 시선이 쏠릴 수 있으니, 최대한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내 몸은 건조하다고 생각하며 원래 걷는 속도로 사물함에 다가갔다. 그리고 후드티를 꺼내 몸을 닦았다.
실제로 저도 강습가던 날, 수건을 집에 두고간 적이 있었거든요. 샤워를 다하고 나가는 시점에서야 깨달았습니다(울고 싶었어요). 저도 태재님처럼 온갖 지혜를 발휘해 그날 입었던 하얀색 속티로 몸을 닦은 기억이 납니다.
이외에도 나누고 싶은 장면이 많습니다. 흥미로운 건 20대 남성인 작가님이 초급반부터 중급반,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양하게 겪은 수영장 경험을 담고 있다는 겁니다. 또 누구나 겪을 법한 강습 과정을 똑같이 겪고 기록했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2017년의 일지인데도 2021~2022년의 제가 겪은 상황과 비슷한 게 많더라고요.
이미 수영 고수인 분들이라면, 추억을 더듬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수영장 분위기가 궁금한 초보들이라면, 글로 미리 그 기운을 가늠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인상 깊었던 몇몇 문단을 여러분과 나눠보려 합니다(추천해준 물개, 고맙습니다!)
p.59
랠리 도중 잠깐 쉴 때, 동기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지난주에는 왜 안 왔어요? 그만둔 줄 알았네~ 그래도 나름 수영장 동기인데!” 하고. 동기 아주머니의 그 한마디가 ‘나의 공백을 알고 계셨구나.’ 싶어서 뭉클했다. 한 달 동안 별다른 대화는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한날한시에 시작했다는 일치감이 있다. 내 또래가 아닌 사람과 같은 시작점에서 동료가 될 수 있는 경험, 살면서 이런 경험을 몇 번이나 할 수 있을까. 귀하다.
p.69
매일 오는 수영장, 반복되는 리듬이 생긴 덕분에 요즘은 곧잘 무아지경을 겪는다. 무언가를 자연스럽게 하게 될 정도로 익숙해졌을 때, 내 안의 잡념들이 없어지는 지경. 그 지경에 이르면 잡념이 있던 자리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올 수 있고, 나는 그 아이디어들로 나의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p.141
엉성함을 반가워하는 와중에, 강사님의 한마디가 가슴에 박혔다. “처음부터 너무 멀리 나가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물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세요.” 수영장에서 듣는 말들은 때때로 내 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운동의 물결이 감동의 물결이 되는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