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보니 남도스포츠의 자녀가 됐습니다. 아니,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는 남도스포츠를 운영하고 있었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남대문시장과 남도스포츠에 출입하게 됐어요.
어린 시절의 남대문 시장에 대한 기억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엄청 빼곡했고, 상인들이 앞가방을 메고 지폐를 꺼내면서 자연스럽게 호객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었죠. 금방이라도 길을 잃어버릴 것 같았고, 당시에는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 살펴볼 여력 없이 분주했던 곳으로만 기억해요. 그래도 그중에 저의 유일한 안식처는 남도스포츠 앞 토스트 가게였습니다.
시장에 가는 날은 꼭 토스트를 사 먹는 날이었어요. 토스트 하나를 포장해서 가게로 와서 한구석을 차지해 열심히 토스트를 까먹었습니다. 토스트를 먹는 사이에도 가게에는 손님이 계속 드나들었다. 단골인 손님, 처음 수영복을 구매하기 위해 온 손님, 외국인 관광객 겸 손님도 있었죠. 그러고 보니 지금도 남도스포츠에서는 고객이 아니라 손님이라고 지칭하는 듯해요. 시장의 섭리에 따라 호칭도 운용되는 거겠죠.
사춘기에 접어들며 저는 더 이상 남대문시장과 남도스포츠에 가지 않았어요. 학교와 학원에 가야 했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에 바빴습니다. 생활권도 학교와 학원 친구들 사이를 맴돌았죠. 그 사이 가게는 남대문 시장 내 다른 건물로 이전하기도 했고, 직원들도 새로 뽑았으며, 재고를 모두 가게 안에 정리할 수 없어 창고를 만들기도 했어요.
저는 자연스레 시장에 발길을 끊었기 때문에 제가 알 수 있는 남도스포츠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보다 세상에 더 궁금한 게 많아져서 딱히 시장에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다만, 학창 시절 아버지 직업란을 적는 일에는 자연스럽게 자영업자라고 적었고, 친한 친구에게는 우리 집이 수영복 가게를 한다는 사실 정도는 부지런히 알렸던 것도 같아요.
어른이 되고 30대에 진입하면서 지금 저는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아버지가 남도스포츠에서 일하자는 러브콜이 한창 있었던 20대 후반을 통과했고, 저는 어찌 됐든 다른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른이 되면 그렇듯, 저 역시도 일을 매개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요. 이상하게도 남도스포츠와 인연이 되는 일이 생겼어요.
대화를 하다 보면 스몰토크의 주제로 취미가 오르곤 했는데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취미로 수영을 꼽곤 했어요. 한국에 이렇게 수영 인구가 많은 줄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 속에서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스몰토크는 물 흐르듯 아래의 방향으로 자주 향하게 되는데요..
A : 수영한 지 N년 정도 됐어요.
나 : 아, 그러시군요. 저희 집이 수영복 가게를 해요
A : 혹시 어디에서 수영복 판매하세요? 기회 되면 가볼게요!
나 : 남대문 쪽에서 오랫동안 해왔어요.
A : 남대문의 유명한 수영복 가게 있잖아요. 그…
나 : 혹시 남도스포츠 아닌가요?
A : 네! 맞아요. 수영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더라고요.
나 : (수줍) 저희 집이 그 집이에요.
A : (!!!)
나 : (!!!)
수영인에게 남도스포츠집 자녀는 스몰토크에서 일정량의 신뢰도를 확보하게 됩니다. 저는 수영인이 아니었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수영인의 대우를 받기도 해요. 때아닌 부담감으로 최근에는 자유수영을 다니면서 비수영인을 벗어나고자 하려 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수영과 그 문화에 대해 관심이 생겼고, 더불어 남도스포츠의 존재에 대해서도 여러 명의 수영인들 사이에서 발견하고 있죠.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갖게 된 정체성인 '남도스포츠 자녀'는 30년 넘는 시간 동안 수영인과 함께 가게가 성장하면서 저도 모르는 새 강화되고 있었어요.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남도스포츠'를 매개로, 수영용품과 문화에 대해서 현장감 있게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또 오고 가는 손님의 동향과 구매 방식을 알게 되면, 수영인(또는 수영을 하고 싶은 분)에게 보다 유용한 정보를 공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렇게 '남도 스포츠 레터'에 대한 생각은 슬그머니 '수영 문화 확산'과 '수영인과 친밀해지기'라는 당돌한 목표 아래 슬몃 자라나고 있었습니다.